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에코의 초상

fsdrfds 2024. 1. 31. 12:20


밤에 ㅡ 김행숙 시 밤에 날카로운 것이 없다면 빛은 어디서 생길까 .날카로운 것이 있어서 밤에 몸이 어두워지면 몇 개의 못이 반짝거린다 . 나무 의자처럼 나는 못이 필요했다 . 나는 밤에 내리는 눈처럼 앉아서 , 앉아서 기다렸다 . 나는 나를 , 나는 나를 , 나는 나를 , 또 덮었다 . 어둠이 깊어 ...... 진다 . 보이지 않는 것을 많이 가진 것이밤이다 . 밤에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밤의 우물 , 밤의 끈적이는 캐러멜 , 밤의 진실 . 밤에 나는 네가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.낮에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낮의 스피커 , 낮의 트럭 , 낮의 불가능성 , 낮의 진실 . 낮에 나는 네가 떠났다고 결론 내렸다 .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옷은 호주머니가 없고 , 계절이 없고 , 낮과 밤이 없겠지 ...... 그렇게 많은 것이없다면 밤과 비슷할 것이다 . 밤에 우리는 서로 닮는다 . 밤에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내가 보이지 않는것같이 , 밤하늘은 밤바다같이 ,(본문 20 , 21 쪽 )김행숙 시집 ㅡ에코의 초상 중 [ 밤에 ]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455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 ㅡㅡㅡ오래 아프셨던 할아버지께서 엊그제 돌아가셨다 . 엄마의 전화를 받고 , 냉큼 서울에 올라왔다 . 첫날이던 어제는 장례식장이 조용했는데 오늘은 맞은편 9호실에 상주가 들었고 휴게실에 , 이 시간에 열 살도 안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너댓살 쯤 되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를 번갈아 엎어가며 재우려 하고 있다 . 하하하하 ! 웃음 소리가 넘치는 9호실인데 이 아이들 재워 줄 어른은 누구도 없는가 보다 .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려는데 어린 여자 아이들 눈빛이 자꾸 밟힌다 . 어쩌지 ... 어쩌나 , 엎어 줄까 , 물어야할까 ? 저들끼리 좋아 그런 듯도 보이고 , 안쓰럽기도 하고 ...책 속에 묻던 눈길이 계속 9 호실의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 .2018 , 11 ,18 일기 중
타인의 불행을 내재하는 말 아닌 말, 에코
끝내 닿지 못하고 돌아오는 존재의 초상

시인은 종래의 서정적 자아와 결별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적 실험을 감행하며 2000년대 뉴웨이브를 가져온 시단의 대표 아이콘이다. 2003년 첫 시집 사춘기 (문학과지성사, 2003)로 서정에서 일탈하여 다른 서정에 도달한 김행숙은 현대시의 어떤 징후 가 되었고, 이 첫 시집을 통해 그녀는 시를 쓴다는 것은 윤리학과 온전히 무관한 사춘기적 ‘경계’에 머문다는 뜻 임을 보여주었다(문학평론가 이장욱).

그간 김행숙 시의 행보를 요약하자면, 타자를 향한 낯설고 위험한 모험이라 할 수 있다. 관심의 대상과 표현 방식은 조금씩 달라져왔지만, 그 시선은 항상 자신 안에 웅성거리는 다른 ‘나’들에게 머물렀고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관심으로 벋어 나갔다.

이번 시집은 제목에서 의미하듯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마지막 말을 되풀이해야만 하는 ‘에코’의 운명을 시적 자아의 초상으로 받아들인다. 외부의 목소리가 되울려서 나의 몸과 말, 생각이 되는 경험을 통해, 화자는 타인의 불행을 ‘나’의 일로 겪어내며 한 그루 덤불을 껴안고 활활 타오른다. 그러면서 끝내 가닿을 수 없는 타자의 경지, 오로지 자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존재의 경계에 서서 자책한다. 회피하고자 애써도 회피할 수 없는, 지극한 슬픔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시간, 또 다른 관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.


시인의 말

1부
인간의 시간/존재의 집/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/낮/아담의 농담/밤에/연못의 관능/유리창에의 매혹/산책하는 72가지 방법/새의 위치/상형문자 같은/1인용 식탁/아, 서사극/타워/두 의 바퀴/공원의 취향/소/몇 번의 장례식/새의 존재/젊은이를 위하여/노인의 미래/도시가스공사의 메아리/물방울 시계/이름 모를 바닷가/아담의 잠옷/잠의 방언/샹들리에/소리의 악마/저 사람/철길/차이와 동일성/이사/타일의 규칙/K/청년의 희망/밤의 고속도로/좁은 문/비누의 맛/실종자/커튼이 없는 집/지팡이와 우산/두 사람/섹스 센스/좋은 말/2박3일/트럭 같은 사랑/허공의 성/어딘가, 어딘가에는/어느 머리카락 광대의 회상

2부
공감각의 시간/천사에게/半個/빛/타인의 창/모르는 목소리/눈의 위치/저녁의 감정/뒤에서 오는 사람/옥도정기 찾기/이웃 사람/창과 방패/조용한 지구/문지기/생각을 할 때/마른번개들/사랑하는……/잃어버려지지 않는 찾아지지 않는/8時가 없어진다면/에코의 초상

해설 존재 바깥에서 물결치는 ‘인간의 시간’ 박진